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보에 작전 (문단 편집) == 진실 == 사실 미국은 전쟁 끝날때까지 보르네오를 내버려두려고 했다. 사실 1945년이 되면 [[일본 해군]]은 바다로 기어나오지도 못하고 있었고 당연히 전략자원의 본토 수송은 꿈도 못꿨다. 게다가 이미 1944년 후반기 미군이 일본 본토와 동남아시아 점령지 해상 교통망의 중간 지점이었던 [[필리핀]]에 상륙, 제해/제공권의 장악으로 일본군이 본토에서 보내는 해상수송은 [[대만]] 이남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했다. 그나마도 미 해군의 무제한 [[잠수함]]전으로 [[화물선]]이 보이는 족족 침몰당해서, 일본에는 보르네오산 전략자원을 본토로 수송할 화물선조차 남지 않고, 얼마 안되는 화물선마저 [[조선]]과 [[중국]]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인 '''[[쌀]]'''을 싣고 오는데 주력하고 있었다. 거기다가 [[필리핀 탈환전]]과 [[오키나와 전투]]로 동남아시아-일본 항로는 이미 자연적으로 차단된 상태였다. 이 상황에서 보르네오 섬에서 석유를 아무리 뽑아낸다 한들 본토로 못 옮기니 냅둬도 그만이었다. 그리고 아주 냅둔 것도 아니고 [[폭격기]]로 가끔 두들겨주기도 했다. 사실 연합군이 보르네오 섬 공략을 계획한 건 정치적 문제였다. 중부 태평양에서 시작된 연합군의 대반격작전 대부분은 모두 다 '''[[미국]]'''이 하고 있었으며 45년 시점에 이르러 [[영국군]]은 [[미얀마]] 대부분을 탈환했지만 여전히 해당 지역에 묶여 있었으며 [[영연방]]인 [[호주군]]은 [[뉴기니]] 섬과 태평양 각 도서에 고립된 일본군 잔당을 상대하고 있었다. 여기에 일본 본토 진공까지 사실상 [[미군]] 혼자 다 하려는 상황이라 영국으로선 매우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. 사실 미국 혼자 싸워도 일본이 망하는 건 변하지 않지만, 중요한건 일본 항복 이후 태평양-아시아에서의 세력질서와 정치적 지분이었다. 이에 영국은 자국군과 호주군을 주력으로 하고 일부 [[네덜란드군]]을 더한 병력을 주력으로 하는 보르네오 섬 공격 계획을 제안하나, 이마저도 '''미군의 지원이 없으면 할 수 없었다'''. 때문에 온갖 이유를 다 들이댔는데 대표적인 것이 역시 보르네오 섬의 석유수급루트 차단이고, 그 외에 [[필리핀]]을 점령한 미군에의 위협 제거 등등을 거론했고, [[맥아더]]도 자신의 정치적 입지[* 당시 독일 항복으로 스포트라이트가 다 유럽에 집중된 반면 오키나와 전투는 지지부진해서 맥아더는 잠시 언론의 무관심을 받는 중이었다.]와 동맹국 배려 차원에서 이를 지원했던 것이었다. 실제 전쟁이 끝나고 약 10년 뒤부터 작전의 핵심이었던 호주 내부에서는 어차피 실행 안했어도 이길 전쟁, 괜히 고집부리고 쳐들어가다 수백명의 애꿎은 젊은이만 희생시켰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. [[분류:1945년 전투]][[분류:태평양 전쟁/상륙작전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